Комментарии:
저분은 저 시대에 저걸 어떻게 이해했을까 지금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제서야 조금씩은 밝혀지고 있던 것들을
Ответить나라고 할만한 게 없기 때문에 윤회를 안 하는 게 맞는데. 이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윤회를 하는 겁니다.
Ответить빅뱅이 발생할 즈음에 나는 여기 저기 흩어진 먼지와 가스였다. 백년 안에 나는 시체가 되고, 백억년 후에 그 시체는 먼지와 가스가 되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을 것이다. 만물은 먼지와 가스다. 잡초, 바퀴벌레, 강아지와 나는 평등하다. 내 빤쓰는 지가 나를 소유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무덤에 들어갈 시체가 존엄하다면 그 시체가 두르고 있는 빤쓰도 존엄한거다. 나는 딱 내가 입고있는 빤쓰만큼만 존엄하다.
Ответить감사합니다..
Ответить손미애박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자아라고 일컬어지는 게 저는 이 시대의 우리 말로 따져보면 자아라기보다는 "자기의 영혼" 이라고 번역을 하는게 맞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아라는 개념이 원래 중국문자의 개념이고 그것도 굉장히 오래 전에 사용된 개념인데 현대의 한국의 개념 자아와 불교 경전의 자아를 동일하게 간주하면 여러가지 혼동되는 점이 있지 않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원체 우리말 중 추상적인 개념들은 모두 한자화한 명사를 사용하여 "자기의 영혼"도 이게 우리말이라고 해야 맞는 것인지 헤깔리네요. 정말로 자아는 없나봅니다. ㅎㅎ
이제는 인도가 인구가 가장많은나라가되었죠
Ответить불가족천민들은 빨리 인도를 떠나라
Ответить이게 자꾸 떠서 다른거 하며 대충 들었는데, 좋은 말이더군요.
NPC처럼 살지 않기 위해 생각좀 하라는 얘기로 알고..
그런데 모든게 연결되어 있다는건 대충 알겠는데,
마치 양희은의 깊은산속옹달샘 노래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다 이유 있는 그런 삶이 감정덩어리의 촉감을 위한 삶이라면
이 생은 이 지구의 감정더미들은 핵폭발로 사라져도 되겠구나
삶에 큰 의미는 없겠구나
공생을 힘들게 하는 이기적 감정덩어리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면 말이죠
허무한 생각도 드네요.
댓글 타고 들어가 본 마르크스 철학 강의 댓글들중 교조적이라며 지가 더 교조적인 감정덩어리도 보이고
그러고보니 완전히 이성적 존재란 열반에 들어야 가능한 듯 한데
아름답게 감정을 조절하면 그것도 이 짧은 생에 아름다운 경험이 아닐까
윤회로 환생해도 이전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할텐데 아쉽기도 하네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환생시 그 일에 천재가 될거란 막연한 기대도 드네요.
명쾌한 강의 감사드립니다
Ответить초기경전에도 윤회를 설한 부분이 나옵니다.
Ответить불교는 알면알수록 아름답습니다. 상식적이구요.. 저는 인류의 구원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Ответить저는 불교의 무아 힌두교 아트만, 종교적 구분은 있지만 실질적의미가 있나 싶어요 자아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세계가 만들어지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세계가 만들어지는데 일체유심조가 아닐까합니다 동시성이론도 범아일여가 되면 그또한 동시성이 발현되지않을까요 개념없이 떠든건 아닌가 하지만 이거 항상 궁금했어요
Ответить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입니다
나는 있는 것이고 그 나가 세상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는다면 굳이 부처가 세상에 나서서 인간을 행곡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중생들의 스승이 부처님이시니 석가모니부처님이 맞습니다.
불교를 믿든 안믿든..
불교는 나의 불성을 발현하는 부처님의 성품 내얘기이기 믿어야겠지요. 믿지않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팔만대장경이 있는데 중생들이 공부할 생각을 안하네요. 수준에 따른 모든 가르침이 팔만대장경이니 이행도 수행도 있고 난행도 수행도 있으니 영원한 행복과 대자유를 위해 신해행증하시면 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어려운 불교를 이렇게 쉽게
깔끔하게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ㆍ
사띠지관이 하단전주입니다 고집멸도 괴로움을 마음을 하단전에모으니 멸해지고 도가 닦인다 에스맥 큐로컴 지엔코 주식매수하십시요 미국 brk.a 처럼 억대주가가 될수있습니다 중관이 중단전주 선나가 상단전주입니다
Ответить석가모니는 감각은 살고 죽을수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사가 없다고했다. 손을 벽에다 갖다대면 벽에서 생기는감각인가 손에서 생기는감각인가.
Ответить평소 궁금했던 내용인데 정리가 잘 되어 있네요.
Ответить힌두교의경전인
우파니사드를
조금만 이해하면
불교가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인도에서 사라진 이해될거에요!
무아가 무가 아니고
자아라는 것이
환상이라는것입니다.
붓다는 형상(물질적)의 세계만 사색해서 연기론을 만들었
Ответить이런 근본 불교 매우 좋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요?
Ответить연기는 인과율이 아닙니다
Ответить1. 식이 윤회하는 상태에서 무아를 깨닫고 윤회를 벗어나면 진리를 깨닫는다 2. 일관성있는 형식체계에서 참이지만 증명불가능한 명제가 반드시 존재한다 엄밀하진 않지만 1과2의 유사성(진리는 참거짓으로 판단하는 형식체계보다 더 큰체계)보면 시대는 달라도 사람이 생각하는건 비슷한거 같네요 더 일찍 깨달은 부처가 더 대단하긴하지만
Ответить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내용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윤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육도윤회만을 일컬어 윤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는 정보인만큼 좀 더 깊이, 정확한 교리를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윤회 를 계속하다면
맨 처음 시작 , 첫번째 생은
어떤 조건이 주어져야 태어나는겁니까?
이해가 쏙쏙쏙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Ответить제대로 공부를 좀 하고 남 앞에서 아는체 하세요.
흰두교가 브라만교와 불교가 합쳐졌다니 참 한심합니다.
초기불교 근본불교에서 석가모니가 윤회와 사후세계를 부정했다는건 엄청난 왜곡이네요 무아에 대한 이해부족이네요
Ответить근데 윤회라는 주체(아트만)이 없는데 윤회를 하든 안하든 알빠 아닌거 아님?
어차피 나도 아니고 연속성도 없는데
종교에 과학을 섞지말자 ㅋㅋ 제발
Ответить참 잘 정리된 영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구독 꾹~
계속 시청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5분 뚝딱철학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고 책도 사보았는데...... 초기불교에서 윤회를 부정헀다니 정말 어이가 없네요! 저도 잠간이지만 불교 박사학위 과정을 잠간이나마 공부헀었습니다. 불교를 좀더 제대로 공부 하셔야겠네요......!!
죄송합니다.
불교는 철학이 아니라 엄연히 종교입니다. 불교를 부정하면 불교신자들 눈돌아갑니다. 비밀을 이야기 하면 기득권이 권익을 얻을수가 없으니 욕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와서야 신비주의적 색채를 최대한 지우면서(그럼에도 윤회, 영혼, 사후세계는 포기못함. 왜 포기못할까?) 과학적인 척 이야기 하는데 종교입니다. 혹세무민 많이 했습니다. 정도전이 괜히 불교를 팼을까요. 지금와서 아닌척 하는것 뿐입니다. 불교도 결국 사후의 이야기는 형이상학적 이야기고 보이는것도 증명하는것도 아닌 그냥 믿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은 믿어야 하는겁니다.
전 싯타르타 좋아하고 그의 깨달음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100% 신뢰하지 않으며(애초에 불경이 그가 죽은 후 꽤나 시간이 지난후에나 적혔는데 그게 진짜 그의 말인지 첨삭 됐는지 어찌 알 일) 그 후에 각종 무언가들이 섞인 불교는 믿지 않음.
윤회 있는가, 없는가?
최근 유투브에 몇몇 불교 출가승들이 윤회는 없다라는 주장을 하는 영상이 적지 않게 떠돌아다닌다.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과 익산 사자암에 거주하는 향봉스님이 대표적이다. 법륜스님이나 이중표교수도 마찬가지다. 결론인즉, 윤회의 주체 즉 아트만이 없는데 무아윤회라니 가당치 않다라는 얘기다. 윤회라면 당연히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할 것인데,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이 無我 아닌가. ‘나’랄 것이 없는데 무슨 윤회를 논하느냐, 이런 논지이겠다.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윤회는 존재하며, 윤회의 주체는 ‘나’라고 의심하지 않는 정신과 물질, 몸과 마음이다. 즉 실체적 자아인 오취온이다. 무아는 깨달은 자의 세계이며, 윤회하는 범부중생들의 세계는 ‘나, 내 것, 나의 자아’로 뒤덮여 있다. 무아를 깨닫고 더 이상 안팎의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성자들이 비로소 윤회를 멈춘다.
중생의 자아는 배타적이고 독립적인 실체적 자아이다. 실체적 자아는 매트릭스 matrix이다. 꿈, 허상, 가상현실, 망상, 착각이라는 얘기다. 깨달으면 즉 실체적 자아가 소멸하고 나면 상호의존적인 연기적 자아가 전생의 과보인 금생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찰나생멸을 거듭하다가 죽음에 이르러 마침내 소멸한다. 이로써 윤회가 멈춘다. 궁극적 해탈, 열반이다.
“태어남은 부서졌다. 해야 할 일은 마쳤고 청정함은 이루어졌다.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해탈한 성자인 아라한의 선언이다. 선가의 오도송인 셈이다. 수수께끼 같고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선사들의 노래에 비하면 얼마나 깔끔하고 명확한가.
윤회는 아주 오래전부터 논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초기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인도의 힌두교, 자이나교...물론 사후 천상세계로의 환생을 약속하는 유신론적 종교나 중국의 유교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윤회사상에 속한다. 불교 외부에서는 윤회가 사실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다. 당연히 불교 내부에서는 윤회가 검증 가능한 사실의 영역이며 수행의 근거이다. 수행력이 깊어지면 과거생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꿈속에서든 현시에서든 인연 깊은 존재들에게서 귀띔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과거 삶의 모든 경험과 지식들을 어디에 저장되어 있을까? 경전에서는 명확히 그 장소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신비주의 계통에서는 우주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하며(아카식 레코드 akashic records), 불교 유식학에 따르면 8식인 아뢰야식이다. 물론 초기불교에서는 6식(시각의식, 청각의식, 후각의식, 미각의식, 감촉의식, 생각의식)외에 또다른 의식을 설정하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제6식(생각의식)이 그 모든 정보 덩어리라 여긴다.
다만 범부중생들의 경우, 과거 삶의 정보덩어리인 제6식을 소환하고 식별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마음의 능력이 계발되어 있지 않기에 윤회에 대한 확신과 검증이 어려울 따름이다. 수행력이 깊어지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윤회를 부정한다면 불교는 설 자리를 잃는다. 사성제도 8정도도 12연기도 허망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뭇중생들이 태어날 때 초기조건(감성, 지능, 육체적 능력, 부모형제, 주위환경 등)이 제각기 판이한 이유도 그저 우연이거나 숙명에 지나지 않게 되며, 죽음 이후의 삶을 부정하기에 그 어떤 의미 있는 노력도 우스꽝스러워진다. 어차피 한 번뿐인 삶인데, 도덕과 윤리, 이러저러한 수행 따위를 들먹여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어진다.
윤회를 확인하기 위한 노력과 그 결과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과 달리 이제는 제도권 학자들도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와 근거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3천여 사례를 기록한 정신과 의사인 이안 스티븐스 박사, 한국에서는 물리학자인 김성구 교수, 종교인류학자인 최준식 교수, 신경정신과 전현수 박사 등이 대표적이다.
상식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윤회의 증거를 몇 꼽아보자.
1. 초기조건의 상이성. 성별, 외모, 정신능력, 집안환경, 부모 등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삶의 출발선이 제각기 다른 이유는 윤회와 그 동력인 까르마 아니고서는 결코 설명하지 못한다.
2. 출생시의 기호. 갓 태어난 아기들 가운데 몇몇은 눈에 띄는 기호가 몸에 새겨져 있다. 숫자, 글씨, 반점 등으로 전생의 지위나 경험들을 유추할 수 있다.
3. 입덧. 산모의 취향이 아니라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전생 취향임에 분명하다.
4. 어린아이들의 기억. 특히 5세 이전의 어린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한다. 수없이 많은 사례가 있다.
5. 죽은 이들과의 직간접적인 만남. 사후에 다른 세계에서 환생한 가까운 존재들과의 만남도 드물지만 이루어진다. 포옹이나 가벼운 접촉,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6. 최면요법, 꿈속에서의 만남, 영매를 통한 접촉 등은 강하게 부정할 수는 없지만 조작 가능성이 높기에 굳이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초기불교 경전을 읽다 보면 자주 대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如理作意이다. ‘이치에 맞게끔 생각을 일으켜라’ 하는 정도로 이해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작의는 생각하는 작용인데 3가지로 나뉜다. 인식, 판단, 사유가 바로 그것이다. 인식은 의식이 대상(형상, 소리, 맛, 냄새, 감촉, 기억 등)을 확인하는 작용이다. 인식과정에 담긴 정보 data는 마음(감성, 이성)에서 개념적 분석을 거쳐 최종적 판단에 이르고, 대상과 나의 관계 설정을 위한 의도적 행위로 연결된다. 이것이 까르마(업)이며, 사유와 언어, 몸짓으로 전개된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오롯이 마음 하나로 정리해 버리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식과정도 판단과정도 사유과정도 오로지 마음이 그 주체이며 주인공이다. 물론, 마음은 언어, 개념, 표상 등 인지에 관여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정신적 요소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붓다께서 정신적 요소로 마음 하나만을 두지 않고 4가지(감성 受, 이성 想, 의도적 행위 行, 의식 識)로 구분하여 말씀하신 까닭에 주목해야만 한다. 식(인식)-수상(판단)-행(사유)-식-수상-행...대상을 마주한 나의 정신작용의 시스템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반복된다. 12연기는 바로 이 과정에 다름 아니다.
여리작의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인지가 왜곡되어 있음을 깨닫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법의 보편적 성품인 3법인(무상, 고, 무아)이다. 3법인을 모르면, 우리는 대상을 실체적 자아인 5취온으로 착각하며, 3법인을 깨달으면 대상을 연기적 자아인 5온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인식론적 전환으로 인해 매트릭스가 깨지고, 무지와 집착이 남김없이 사라질 때 궁극적인 존재론적 전환으로 인해 범부에서 성자로 탈바뀜 된다.
결론적으로 따지자면, 윤회를 부정하면 불자가 아니다. 불교 가르침의 핵심인 4성제, 3법인, 12연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패륜적 악행인 것이다. 불교 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윤회의 종식, 소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처 - 다음 블로그 <여여불여>
감사합니다 ❤❤
Ответить좋은글 있어 남김니다..
"본래 몸상태(실체)에서 세상 몸(허상)을 보니 "상사작몽"이다ㆍ모두 엊저녁 꿈의 일이다ㆍ
꿈꿀때는 분명이 있었는데 꿈깨고 나면 없다ㆍ한평생 이몸 가지고 살땐 너무 분명하고 심각했는데 한목숨 지고나면 간곳이 없다ㆍ남는건 본래 마음뿐인데 그 본래 마음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있다ㆍ그래서 찾는것이 또 세상의 몸을 다시 찾는다ㆍ극락세계에 가지 못하고 세상의 몸을 다시 찾는것이다ㆍ극락세계에 가면 부처님 나라로간다ㆍ극락왕생하는것이다ㆍ극락왕생을 못하면 생사윤회 하는것이다ㆍ죽고 사는것을 되풀이하는것이다ㆍ"
거룩하신 부처님의 말씀 "금강경사구게"입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이생기심 응무소주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해설)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니라.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
응당히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히 성향미촉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만약 색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지라, 여래를 볼 수 없느니라.
일체의 유위법이 꿈/환영/거품/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어쩔꼬ㆍㆍ 잘못된 내용ㅡㅡ범벅
Ответить불교는 인과론적 윤회를 이야기 했지 부정하지는 않았음 다만 아트만적 윤회를 부정한것임
Ответить흠 깊히가 깊다
Ответить엉터리
Ответить불교는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한다면 ...없다는것이 결론입니다.
석가모니가 있다고 설명한부분은 ..실제로는 아무것도없는 신기루와같은 환영이지만..
중생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그 생각이 있다라고 말한것입니다.
네팔에서 시작되어 인도에서 활동 함. 조선도공이 일본가서 일본 도자기 전세계로~~~ 와 비슷
Ответить영상 잘보았읍니다
이것이 진짜 불교다
감사합니다 🙏
부처님이 윤회나 사후세계를 철저히 부정했다는 주장은
불교의 전통적인 가르침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윤회(생사윤회)를 기본적인 교리로 삼고 있으며,
이는 중생이 무명의 상태에서 생사를 반복한다는 개념입니다.
부처님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탈, 즉 열반을 가르치셨습니다.
윤회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부처님의 주요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부처님은 사후 세계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논의한 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육도윤회'의 개념은 사후에 중생이 업에 따라 다양한 상태로 다시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러한 논의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현실에서 고통을 벗어나는 실천과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윤회나 사후 세계에 대한 가르침은 결국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따라서 "철저히 부정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처님은 윤회의 법칙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수행을 강조했다고 보는 것이 더 올바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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